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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교회 설교후기] 예인교회의 공의와 정의는...

오늘 설교는 여느 때와는 달리 교회에 전반적인 운영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아마도 정성규 목사님은 어제 진행된 지명방어의 교회 행사를 마치고나서 설교를 대폭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익숙하게 들릴 수 있는 교회..

[예인교회 설교후기]구원은 삶의 밑바닥(BOL)에서 세워진다.

오늘 설교는 공의와 정의로 부르심 두 번째, 구원(공의와 정의를 논할 자격)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늘 정성규 목사님의 설교의 핵심은 진정한 정의와 공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원이 선행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온..

[부천 예인교회 성경강좌 후기] 믿음과 행함, 강사 숭실대 권연경 교수

4월 한달간 부천 예인교회에서는 식사 후 오후 2시부터 예배가 진행되는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성경강좌가 4월 한 달간 진행된다. 지난 주와 이번 주는 숭실대 권연경 교수를 통해서 '믿음과 행함'에 대한 강좌가 진행되었다...

[부천예인교회 설교 후기] 아둘람4, 다윗의 변절

< 다윗을 도피 생활 경로 > 사진출처 : archintor.egloos.com 이 설교 후기는 3월 4일 부천 예인교회 정성규 목사의 설교 '시글락 - 구부러짐'을 듣고 작성되었다. 지조 vs 변절 사실 역사 속에서 지조와..

오늘 설교는 공의와 정의로 부르심 두 번째, 구원(공의와 정의를 논할 자격)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늘 정성규 목사님의 설교의 핵심은 

진정한 정의와 공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원이 선행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온전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자신의 인정하고 성숙함에서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것인데,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면 요엘서 2장 28장~30절 처럼 차별이 없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는 

"누구든지 나 하나님에게 구해 달라고 부르짖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로마서 10장 13절 메시지성경. 

그런데 그 구원은 누군가의 영접 기도를 따라함을 통해서, 

혹은 한 번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말 내가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예수님께 손을 내밀 때, 바로 진정한 절망의 늪에서 잡는 주님의 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난 이 상황을 BOL(Bottom of Life)로 명명해 보았다. 

주님의 역사는 설교자의 이야기처럼 '예수 한번 믿어볼까?' 정도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주님의 구원 역사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다양할 수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절실함' 이라는 것에는 깊은 공감을 갖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이 구할 수 없는 자녀의 죽음 속에서 간절히 주님을 찾았고, 

어떤 이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을 낫고하는 간절한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찾았다. 

또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받고 있는 사회적 고립(왕따)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주님을 찾았다. (삭게오) 


그럼 나의 '절심함'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이 보내주신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여러나라를 다니며 그분이 가진 '공평과 정의'에 대한 고민이 

내 안에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구마을에 대한 관점으로 우리 마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치유를 어렵다라도 

눈물이라도 닦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몸부림을 했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내 삶의 바닥이라고 느껴지는 그 절망 속(BOL)에서 다시금 내게 손을 잡아 주신 주님!  

나의 '절박함'을 다시금 공평과 정의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내 삶의 영역에서 정말 금식하며 그 아픔을 치유받기 위한 절박함으로 새로운 새벽 사경회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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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4월 한달간 부천 예인교회에서는 식사 후 오후 2시부터  예배가 진행되는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성경강좌가 4월 한 달간 진행된다. 지난 주와 이번 주는 숭실대 권연경 교수를 통해서 '믿음과 행함'에 대한 강좌가 진행되었다. 

<부천 예인교회, 주일 성경강좌 후 기념 촬영>

개인적으로 '믿음과 행함'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겪어왔던 교단적 맥락도 있고, 한국 신학에서는 첩예한 대립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말씀은 비교적 성경적 원리에 의해서 쉽고 편하게 설명되어졌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필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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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실적 필요. 돈과 관련된 아파트, 집 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룹니다. 

   우리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우리의 해답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예수 믿는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신앙으로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그러나 생각은 똑같은 것은 아닌지?  


  실제로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논리는 똑같은 것 같다. 

    어쩌면 실제 삶은 더 세속적인지 모르겠다.  

    전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가 이명박 장로의 이야기보다 더 기독교적이었다는 말처럼 믿음은 실제를 가지고 증명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생수의 근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님은 내 인생으로 개입하신 후 이끌어 가신다. 


배포한 프린트 물은  '믿음'에 대한 생각을  <로마서 산책> 이란 책에서 썼던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의 믿음으로라는 말을 -> 행위 없이로 생각하는 경우 많다. 그럼  믿음은 = 행위 말고? 

  복음의 핵심은 순종은 믿음으로 다시 믿음은 행동으로 그래서 열매를 통해서 그 믿음을 시험하게 된다.   


  우리의 행위 없이라고 생각하는 믿음 중심의 신앙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바울이 강조했던 믿음의 본래적인 의미는 우선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살펴보자.  

    갈라디아서에서 이야기한 '믿음'은 

       3장 2절을 우리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면  '내가 한 가지만 물을께~ 성령이 율법을 통해서냐? 듣고 믿음을 통해서냐?' 정도로 들을 수 있다.  

   성령을 우리가 만들 수 있느냐? 우리에게는 해답이 없다. 해답은 밖에서 와야한다. 

   성령이 인간의 어떤 조건에 따라서 역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노력 여하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한다는 것이다.  


  왜? 믿음이 해답이냐? 믿음으로 성령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나를 생각하면 된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밖에 없다. 해답이 우리에게는 없다. 

  성령은 준다는 개념이고 우리는 받는다는 개념으로 생각해야한다.  '성령 체험'은 없다. '성령'은 받는 것이다. 

  성령은 은혜의 선물! 구원은 성령이 없이는 안된다.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경우를 살펴보자. 

    아들을 준다고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믿음이 필요했다. 

     정말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 손을 댓다는 표현이 

         = 역사하셨다. 

    이삭 = 성령으로 잉태된 자. 

    구원의 소망 = 성령으로 태어난 자. 

    이제는 육체로 끝내려하는가?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것 -> 믿음으로 = 성령으로 

    성령을 포기하면 의의 길을 포기하는 것. 

    성령을 쫓아 행하라~ 성령을 쫓아가지 않으면 


  바울 서신에는 지옥의 개념이 없다. 

    

   우리의 삶의 씨를 성령 안으로.  성령의 밭으로 씨를 뿌리면 -> 영생을 수확. 

   영생을 거져 주는 것으로 쓰여진 부분은 거의 없다. 

   생명은 하나님의 소관.  

   조상 = 아버지.  믿음의 조상 = 아브라함 = 아버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그것을 듣고 믿고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성령이 생겨났다. 

   나는 성령으로 사역한다. = 복음의 열쇠.   


  웨슬리도,  부흥사도, 그러나 나는 ?? 

  

  내가 필요한 믿음.  나를 이끌어 가는 삶. 

    가끔 이상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말하기만 해도 믿는다는. 

    여전히 동일하게 우리의 삶에 역사하신다는 믿음. 성령의 역사. 

    복음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에서 기인되는 위선일 수 있다.(바리세인) 


   성령이 없으면 믿음은 가짜.  위선? 

   내가 무엇을 심든지 뿌린데로 거둔다.  

   실질적인 삶에서의 변화.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것이 역사. 성령. 

   

   우리의 삶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사는 삶. 위선적 폼인지? 

   내 삶에 성령이 역사하는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믿는 것. 

   에스겔서. 


  실질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삶.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것. 예수님의 제자들.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 

    우리의 교회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확인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속에 나타는 하나님.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이 자신의 능력을 알리신다. 

    예수님이 대신해서 그 능력을 알리신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인줄을 알리라. 

    서로 사랑하는 모습. 사랑이 있는 공동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지금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린다. 

    생명의 선물.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길.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야한다. 

  나의 삶은? 


  이성.  제대로 알면 나의 삶이 바뀐다. 

     정확하게 알게되면 사고가 달라진다. 

     정확하게 알아가는 관정. 

     정확하게 듣는 것.  정확하게 읽는 것.  잘 들으려면 경손해져야. 


  정직한 것이 중요한데, 자꾸 장난을 친다. -> 끝임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그래서 말씀이 중심. ->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다. 

  말씀을 정복하자?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 말씀은 살았다. 

  위선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 vs 성령의 역사 

     감성적인 부분. 성령론의 강조.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성적으로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 

     이성 vs 감성.  성령에 대한 설명이 어렵다. 

     말씀을 배워가는 성령운동.  


  각자 믿음을 출발하는 배경은 다를 수 있다. 

  이지적 -> 생각의 실체 

  체험적 -> 체험의 실제. 


  한국교회 -> 정신 분열증.  인격의 분열. 삶을 경험하는 방법이 필요. 

              은혜의 말씀을 너무 피상적으로 들어왔다. 

              통합적인 복음의 이해 

              위선을 극복하는 것에서 출반. 

              한국교회의 올바른 복음. 


  정확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자극을 준다. 

      우리가 얼마나 진솔한가? 

  복음이 진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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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 다윗을 도피 생활 경로 >
사진출처 : archintor.egloos.com


이 설교 후기는 3월 4일 부천 예인교회 정성규 목사의 설교 '시글락 - 구부러짐'을 듣고 작성되었다. 


지조 vs 변절

사실 역사 속에서 지조와 변절에 대한 이야기는 해석하는 자의 여러 시각에 따라서 많은 차이를 보였던 것 같다. (역사가의 해설에 따라서 변화하기는 하지만 결국 그 역사도 성공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사마천의 사기를 무척 좋아한다.) 오늘 설교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다윗이 변절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길을 가게되는 과정을 변절로 설명했다. 


본문의 배경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결국 블레셋으로 도망해서 지냈던 시기이다. 


(기도 없이) 나의 생각으로 판단하기... 

본문 사무엘상 27절 1절에서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하며 사울의 손을 벗어나기 위해서 결국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성규 목사님이 주목한 것은 바로 1절 가장 앞에 있는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이다. 여기서 "생각"의 원어로 보면 '스스로에게 말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앞서 살펴보았던 사무엘상 23장 2절에 있던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라고 기도하며 그일라와 전쟁을 전개했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다윗을 변절

이 모습을 정성규 목사님은 '다윗의 변절'이라고 표현했다. 하나님께 먼저 묻고 공동체와도 소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하나하나 진행했던 다윗이 위험에 빠지자 그러한 태도와 자세가 바뀌어(변절해서) 하나님께 묻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한 후 판단해서 행동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어떤 사건이든 일어나면 먼저 판단하게 되나, 그 생각이 하나님께 갔던 이전에 비해서 이번 블레셋으로의 망명은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으로 갔다는 설명이다. 


시글락 = 구부러짐

그렇게 블레셋으로 망명한 후 있게 된 곳은 '시글락'이라는 곳이었다. 재밌게도 '시글락' 원어의 뜻은 '구부러짐'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윗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에서의 삶도 그리고 시글락에서의 삶도 결코 편하지는 않았다. 정말 매 순간 삶과 죽음을 왔다갔다는 전쟁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시글락에서 다윗이 했던 일은 블레셋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자비로웠던 다윗이 삼상 27장 9절에서는 무자비한 살육자로 변신한다.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는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선택받았던 다윗이 이스라엘과 대치하고 있었던 블레셋의 편으로 전쟁을 했던 것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헷세드)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햇세드'라는 표현처럼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은 결코 포기함이 없으시다. 내가 나를 포기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 사랑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던 그리고 신약에서도 마지막 심판의 때에는 결국 그들(이스라엘 사람들)도 일부 구원하신다는 그 놀라운 사랑의 언약을 표현하고 계시다. 


하나님의 간섭하심

다윗의 시글락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은 2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왕의 호의를 맡을 뻔 했으나, 주변 신하들의 반대로 결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약 참전했다면… 어휴~ 아찔해지는 장면이다. 


두 번째는 나발의 추수곡식을 받으려고 하다가 외면당해 그를 죽이려고 가는 도중에 아비가일을 만나게되는 사건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나발을 죽게하셨고 다윗은 아비가일과 결혼해서 후일 솔로몬까지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다윗을 블레셋 생활 속에서 아비가일의 일이 하나님의 간섭으로 볼 수는 있지만, 블레셋 망명생활과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 


신앙 = 다윗의 깊이 있는 기도 배우기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지속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하니님께 먼저 구하는 태도를 묵상하게 되었다. 다윗은 아무래도 극심한 사울의 추격이 너무 힘들어져서 하나님과의 뜻과는 다른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윗은 순간 하니님께 기도했던 태도와 자세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비전도 결국 잃어버릴 수 있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삶은 어떠한가? 


'이에 재웅이가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하며 기도와 말씀의 생활을 하고 있는가? 어렵다. 매일 말씀을 보고, 모든 행동 전에 기도를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직 습관화된 모습은 잘 나오지 않는다. 또 현재 다소 나태해진 삶으로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이 무지 약해졌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죽음의 연단을 받았던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하나님을 향해서 외치고 부르짖으며 그 마음을 사기 위해서 엄청 노력했다. 


기도와 말씀으로 생활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 외에 나의 삶의 기준을 잡을 만한 다른 방도는 없다. 


엄청난 하나님의 개입하심

그리고 다윗이 엄청난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느꼈듯이 나도 내 삶 속에서 엄청난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 은혜와 하나님의 섬리하심은 나의 삶 속에서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흔적들로 남아 있다. 아직 내 삶의 날씨는 흐림이다. 해처 나가야할 굽이 굽이가 너무도 많다. 근데 요즘은 다소 자포자기, 어떻게든 되겠지~ 힘들다~ 애라 모르겠다~ 가 너무 많은 것 같다. 


ㅈㅐ ㅇ ㅜ ㅇ ㅇ ㅣ ㅡ  시편 

세상은 내게 세상을 살기 위한 아이템으로 돈, 권력, 지식, 건강, 인맥 등을 펼쳐 보입니다. 

한 때는 나의 손 안에도 그러한 아이템들 가운데 한 두 가지는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하며 생활했던 적도 있습니다. 

나도 세상에서 멋진게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었으니까요~ 

그러나 환난의 날이 이르매 내 손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아이템들은 존재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 바닥을 보고 나서야 내가 이루었던 일들이 내가 아닌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이루어냈던 열매들이었음을 생각해 내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소유했던 아이템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천하무적 아이템이 내게도 동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아이템을 찾아 보고 있으나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삶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서두르거나 나의 생각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행복이요 내 삶의 방향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금 나에게 물어 봅니다. 

나는 삶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매 순간 그 분 안에서 발견하고 

그 분과 동행하며 생활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 같은데, 알 것 같은데… 

주님, 잘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가 봅니다. 


믿음도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주님~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 '믿음'을 다시금 사모합니다. 

놀라운 은혜를 주셨던 주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셨던 주님~ 

영원한 행복을 느끼고, 참 기쁨을 선물해 주셨던 주님~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남과 함께 행복하는 방법을 선물해주셨던 주님~ 


내가 주님을 의뢰합니다. 

주님의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며 천하무적 아이템이십니다. 

내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열망을 품어 주시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도 품고 사랑해 나가는 생활되게 하소서! 

Dynamic Life! have a exiting time!! 누리는 내일을 소망합니다. 


감사와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오늘의 말씀을 다시금 나의 맘에 새기는 삶이 되게 하시고, 

매일 매일 아니 우선 내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생활하는 하루되게 하소서!  


여호와를 의뢰하며 그의 품에 거하기를 사모하는 자에게 놀라운 시간을 허락해주시는 

나의 사랑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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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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