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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교회 설교후기] 예인교회의 공의와 정의는...

오늘 설교는 여느 때와는 달리 교회에 전반적인 운영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아마도 정성규 목사님은 어제 진행된 지명방어의 교회 행사를 마치고나서 설교를 대폭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익숙하게 들릴 수 있는 교회..

[예인교회 설교후기]구원은 삶의 밑바닥(BOL)에서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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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예인교회 성경강좌 후기] 믿음과 행함, 강사 숭실대 권연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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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예인교회 설교 후기] 아둘람4, 다윗의 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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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는 여느 때와는 달리 교회에 전반적인 운영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아마도 정성규 목사님은 어제 진행된 지명방어의 교회 행사를 마치고나서 설교를 대폭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익숙하게 들릴 수 있는 교회 운영적 방향에 대한 설교였지만, 오늘 설교에서 있어서는 정성규 목사님이 목회적으로 양보하기 어려운 절대적 가치와 기준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짙으로 호소력을 표현되었다. 교회의 운영 방향뿐만 아니라 오늘 설교의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느껴지기에) 목사님 개인의 삶과 함께 비춰질 수 있는 이야기들로 들렸다. 


짐월리스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진정한 회개는 삶의 형태와 목적 자체가 완전히 바뀌고, 새로워지고, 태도와 성품이 달라지고, 방향이 전환되는 변혁적 언어이다. 


다시금 반문하게 된다. 

나는 회개하였는가? 만약 회개를 했다면 다시금이 물어보신다! 

그럼 내 삶에서 회개 전과 회개 후의 삶은 어떤 형태와 목적이 바뀌었는가? 

성품의 어떤 점이 달라지고 방향은 어떻게 전환 되었는가?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 주님은 우리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초등부 5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 난 공과공부시간에 우리 아이들에게 물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도 이야기한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그 분의 율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설교에서도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그 믿음을 증명하는 방법은 바로 그 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라고, 설교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바로 '공평과 정의'를 내가 속한 가정, 직장, 사회에서 실현해 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오늘은 더 구체적으로 교회에서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도 부족하지만, 이 땅의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나눔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그러면서 목사님은 성토하셨다. 어제 나눔사역으로 진행된 지명방어 사역에 우리 교인들이 35%만 참석했다고!  예인교회 초기에는 80~90%였던 지명방어가 이제는 35%로 떨어져있는 현실!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우리의 성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에 인도되는 사람이 더 많아 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숨어서 신앙생활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목사님은 좀 더 강하게 그런 사람들의 구원문제까지 걱정하셨다. 그리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우선 교회가 커져서 그러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보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아져야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분립을 해야한가고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사실 그 어조는 목사님의 삶에서 나오는 신앙적 가치와 같은 것이여서, 눈물로하는 고백처럼 들렸고, 그 삶을 공감하기에 듣는 나로서도 나의 삶과 신앙적 가치를 점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내겐 바로 성령의 조명하심이었다~  


------------------- 개 인 삶 의 나 눔 ---------------

부끄럽지만, 

교회 성도라는 측면에서 (또 이런 긴 글은 별로 안 보실 것이란 기대로.. ^^;) 

저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개인 업무적인 영역에서의 삶을 나눠보겠습니다. 


스스로 자신에 대해 충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큰 틀에서 자신의 목표를 세워가며 나름 착실히 살아가던 그 청년은 살아가면서 점차 자신이 스스로 넘기 어려운 현실적 벽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 번 넘어지고 두 번 넘어지고 지속적으로 넘어지다가 결국 피를 흘리며 주님은 이젠 정말 내가 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전 이전에 제가 배워왔던 국제개발협력 업무에서 길이 막혀서 새로운 교육 사업을 시작해보기도하고, 

또 다시 길이 막혀 새롭게 학원이란 영역에 들어와서 작은 영어학습관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사업과 연장 선에 있었기 때문에 시작에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주로 현실적이기보다는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익(영리)을 추구하는 학원의 현실은 저를 비롯한 저희 직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UA(Under Achieving)라는 미성취학생들(쉽게 말하면 나머지 공부학생들)을 담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새로운 교육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현실적인 장벽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함께 회사를 운영하며 뜻을 함께 했던 이전 회사 맴버들은 영리활동에 가치적 동의를 어려워하며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고, 전 새로운 직원들을 뽑아서 다시금 새롭게 하나하나 운영을 직접 담당하면서 교육을 진행해야했습니다. 


다음 만난 벽은 학원 내에 있는 기존 강사들의 기득권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와도 저희 센터에는 인원을 주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7명 이내의 소수 인원으로 영어학습센터를 몇 개월간 운영해야했습니다. 결국 인건비도 마련하기 어려워 UA영어영재센터는 문을 닫아야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발견한 하나님의 뜻은 학교에서는 하위권이라는 이유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아이들었는데, 

센터에 와서 새로운 활력을 얻고 일부는 공부에도 열심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은 정말 선생님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마음에 큰 짐으로 남은 것은 몇 개월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찾아보기 힘든 학생이 있어서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학원보다는 다른 활동을 권해 드리며, 몇 가지 다른 기관들에서 하는 캠프들을 소개시켜준 바가 있었는데, 

그 제안들 중 그 부모님은 유독 '청학동 예절학교'를 고집하셔서 방학 이후로 그 아이는 결국 중학교는 휴학하고 청학동에서 기숙생활을 하게되었답니다. 결국 그 아이이의 자유를 빼앗고 심각하게 구속하는 역할의 선봉이 되었다는 짐을 안게 되었습니다. 


UA센터의 사업 해체는 또 다시 경험하게 되는 좌절이었지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학원에서는 당시의 노력을 인정해서 제게 학원의 초등부를 비롯해서 중등부 전체 영어 과정을 기획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나도 현재의 학원 선생님들 중에서는 그러한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되어 지금까지 그러한 일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기획은 수없이 많이 했는데, 아쉽게도 전체적인 실행권한까지 저에게 오지는 못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실행권한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데, 전체적인 결과의 책임 추궁은 지속적으로 받게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학원의 방향이 제가 기획하는 좀 더 장기적인 학습 방식보다는 단기간의 시험 위주의 학습 방식으로 돌아가게되면서 제 역할은 급격히 줄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역할이 약해지니 이전의 계약 방식으로 학원에 남아 있자니, 학원에서는 인건비의 부담이 컸고 저도 미안했기에 계약을 파트로 돌리고 정리하는 방향으로 제안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지속적으로 계약을 하기에는 비용적으로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에는 영어학습에 대해서 장기적인 학습 기획을 추진할 사람이 없었기에 쉽게 보내지고 못하는 상황이 몇 달 간 지속되었습니다. 


아주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학원은 업무적으로 마무리 잘 되어 가게 되었으며, 

전 이전에 하던 국제개발협력 업무로 복귀하게 되어, 

다음 달 부터는 국제워크캠프기구 www.1.or.kr 에서 필리핀 지역개발을 담당하게 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확실하게 내가 섬겨야하는 대상이 명확해졌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들은 국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 마음에 새겨져서 너무 감사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또 어떠한 장애물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으나, 

제게는 광야와 같았던 학원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감히 짐 월리스가 말한 '회개'를 입에 올리기는 어렵겠지만, 

전 그 시기를 통해서 분명히 다시금 새로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그 분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광야 속에서 다시금 덤으로 얻은 것 같은 인생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디서 무슨일을 하든 각자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조직) 속에서 개인의 역할이 매우 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그 역할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도 뼈 속 깊숙히 느껴보았습니다. 

제게도 부끄러운 모습도 많았지만, 다행히 입술로나 몸으로는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지키려했던 몸부림은 남아 있어서 감사 또 감사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정말 난 할 수 없고, 

주님은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부터의 고백을 가져 온 듯한 면에서는 삶의 형태가 바뀐 듯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포장된 나의 욕망을 이제는 내려 놓고, 

이제는 정말 오늘과 내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동행하심을 구한다는 면에서는 삶의 목적이 바뀐 듯 합니다. 


성품과 태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젠 주님이 내 삶 속에서는 다소 변혁적으로 다가 온다는 측면에서는 '회개'에 한 걸음 더 다가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회개가 성장이라면 그 성장은 예인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누가 이런 무시무시하게 긴 길을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지만, 

모든 예인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성도님들과 함께 외치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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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오늘 설교는 공의와 정의로 부르심 두 번째, 구원(공의와 정의를 논할 자격)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늘 정성규 목사님의 설교의 핵심은 

진정한 정의와 공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원이 선행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온전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자신의 인정하고 성숙함에서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것인데,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면 요엘서 2장 28장~30절 처럼 차별이 없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는 

"누구든지 나 하나님에게 구해 달라고 부르짖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로마서 10장 13절 메시지성경. 

그런데 그 구원은 누군가의 영접 기도를 따라함을 통해서, 

혹은 한 번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말 내가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예수님께 손을 내밀 때, 바로 진정한 절망의 늪에서 잡는 주님의 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난 이 상황을 BOL(Bottom of Life)로 명명해 보았다. 

주님의 역사는 설교자의 이야기처럼 '예수 한번 믿어볼까?' 정도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주님의 구원 역사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다양할 수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절실함' 이라는 것에는 깊은 공감을 갖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이 구할 수 없는 자녀의 죽음 속에서 간절히 주님을 찾았고, 

어떤 이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을 낫고하는 간절한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찾았다. 

또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받고 있는 사회적 고립(왕따)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주님을 찾았다. (삭게오) 


그럼 나의 '절심함'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이 보내주신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여러나라를 다니며 그분이 가진 '공평과 정의'에 대한 고민이 

내 안에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구마을에 대한 관점으로 우리 마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치유를 어렵다라도 

눈물이라도 닦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몸부림을 했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내 삶의 바닥이라고 느껴지는 그 절망 속(BOL)에서 다시금 내게 손을 잡아 주신 주님!  

나의 '절박함'을 다시금 공평과 정의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내 삶의 영역에서 정말 금식하며 그 아픔을 치유받기 위한 절박함으로 새로운 새벽 사경회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세계개척자
4월 한달간 부천 예인교회에서는 식사 후 오후 2시부터  예배가 진행되는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성경강좌가 4월 한 달간 진행된다. 지난 주와 이번 주는 숭실대 권연경 교수를 통해서 '믿음과 행함'에 대한 강좌가 진행되었다. 

<부천 예인교회, 주일 성경강좌 후 기념 촬영>

개인적으로 '믿음과 행함'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겪어왔던 교단적 맥락도 있고, 한국 신학에서는 첩예한 대립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말씀은 비교적 성경적 원리에 의해서 쉽고 편하게 설명되어졌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필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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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실적 필요. 돈과 관련된 아파트, 집 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룹니다. 

   우리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우리의 해답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예수 믿는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신앙으로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그러나 생각은 똑같은 것은 아닌지?  


  실제로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논리는 똑같은 것 같다. 

    어쩌면 실제 삶은 더 세속적인지 모르겠다.  

    전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가 이명박 장로의 이야기보다 더 기독교적이었다는 말처럼 믿음은 실제를 가지고 증명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생수의 근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님은 내 인생으로 개입하신 후 이끌어 가신다. 


배포한 프린트 물은  '믿음'에 대한 생각을  <로마서 산책> 이란 책에서 썼던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의 믿음으로라는 말을 -> 행위 없이로 생각하는 경우 많다. 그럼  믿음은 = 행위 말고? 

  복음의 핵심은 순종은 믿음으로 다시 믿음은 행동으로 그래서 열매를 통해서 그 믿음을 시험하게 된다.   


  우리의 행위 없이라고 생각하는 믿음 중심의 신앙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바울이 강조했던 믿음의 본래적인 의미는 우선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살펴보자.  

    갈라디아서에서 이야기한 '믿음'은 

       3장 2절을 우리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면  '내가 한 가지만 물을께~ 성령이 율법을 통해서냐? 듣고 믿음을 통해서냐?' 정도로 들을 수 있다.  

   성령을 우리가 만들 수 있느냐? 우리에게는 해답이 없다. 해답은 밖에서 와야한다. 

   성령이 인간의 어떤 조건에 따라서 역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노력 여하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한다는 것이다.  


  왜? 믿음이 해답이냐? 믿음으로 성령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나를 생각하면 된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밖에 없다. 해답이 우리에게는 없다. 

  성령은 준다는 개념이고 우리는 받는다는 개념으로 생각해야한다.  '성령 체험'은 없다. '성령'은 받는 것이다. 

  성령은 은혜의 선물! 구원은 성령이 없이는 안된다.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경우를 살펴보자. 

    아들을 준다고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믿음이 필요했다. 

     정말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 손을 댓다는 표현이 

         = 역사하셨다. 

    이삭 = 성령으로 잉태된 자. 

    구원의 소망 = 성령으로 태어난 자. 

    이제는 육체로 끝내려하는가?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것 -> 믿음으로 = 성령으로 

    성령을 포기하면 의의 길을 포기하는 것. 

    성령을 쫓아 행하라~ 성령을 쫓아가지 않으면 


  바울 서신에는 지옥의 개념이 없다. 

    

   우리의 삶의 씨를 성령 안으로.  성령의 밭으로 씨를 뿌리면 -> 영생을 수확. 

   영생을 거져 주는 것으로 쓰여진 부분은 거의 없다. 

   생명은 하나님의 소관.  

   조상 = 아버지.  믿음의 조상 = 아브라함 = 아버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그것을 듣고 믿고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성령이 생겨났다. 

   나는 성령으로 사역한다. = 복음의 열쇠.   


  웨슬리도,  부흥사도, 그러나 나는 ?? 

  

  내가 필요한 믿음.  나를 이끌어 가는 삶. 

    가끔 이상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말하기만 해도 믿는다는. 

    여전히 동일하게 우리의 삶에 역사하신다는 믿음. 성령의 역사. 

    복음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에서 기인되는 위선일 수 있다.(바리세인) 


   성령이 없으면 믿음은 가짜.  위선? 

   내가 무엇을 심든지 뿌린데로 거둔다.  

   실질적인 삶에서의 변화.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것이 역사. 성령. 

   

   우리의 삶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사는 삶. 위선적 폼인지? 

   내 삶에 성령이 역사하는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믿는 것. 

   에스겔서. 


  실질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삶.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것. 예수님의 제자들.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 

    우리의 교회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확인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속에 나타는 하나님.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이 자신의 능력을 알리신다. 

    예수님이 대신해서 그 능력을 알리신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인줄을 알리라. 

    서로 사랑하는 모습. 사랑이 있는 공동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지금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린다. 

    생명의 선물.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길.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야한다. 

  나의 삶은? 


  이성.  제대로 알면 나의 삶이 바뀐다. 

     정확하게 알게되면 사고가 달라진다. 

     정확하게 알아가는 관정. 

     정확하게 듣는 것.  정확하게 읽는 것.  잘 들으려면 경손해져야. 


  정직한 것이 중요한데, 자꾸 장난을 친다. -> 끝임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그래서 말씀이 중심. ->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다. 

  말씀을 정복하자?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 말씀은 살았다. 

  위선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 vs 성령의 역사 

     감성적인 부분. 성령론의 강조.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성적으로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 

     이성 vs 감성.  성령에 대한 설명이 어렵다. 

     말씀을 배워가는 성령운동.  


  각자 믿음을 출발하는 배경은 다를 수 있다. 

  이지적 -> 생각의 실체 

  체험적 -> 체험의 실제. 


  한국교회 -> 정신 분열증.  인격의 분열. 삶을 경험하는 방법이 필요. 

              은혜의 말씀을 너무 피상적으로 들어왔다. 

              통합적인 복음의 이해 

              위선을 극복하는 것에서 출반. 

              한국교회의 올바른 복음. 


  정확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자극을 준다. 

      우리가 얼마나 진솔한가? 

  복음이 진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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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 다윗을 도피 생활 경로 >
사진출처 : archintor.egloos.com


이 설교 후기는 3월 4일 부천 예인교회 정성규 목사의 설교 '시글락 - 구부러짐'을 듣고 작성되었다. 


지조 vs 변절

사실 역사 속에서 지조와 변절에 대한 이야기는 해석하는 자의 여러 시각에 따라서 많은 차이를 보였던 것 같다. (역사가의 해설에 따라서 변화하기는 하지만 결국 그 역사도 성공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사마천의 사기를 무척 좋아한다.) 오늘 설교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다윗이 변절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길을 가게되는 과정을 변절로 설명했다. 


본문의 배경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결국 블레셋으로 도망해서 지냈던 시기이다. 


(기도 없이) 나의 생각으로 판단하기... 

본문 사무엘상 27절 1절에서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하며 사울의 손을 벗어나기 위해서 결국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성규 목사님이 주목한 것은 바로 1절 가장 앞에 있는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이다. 여기서 "생각"의 원어로 보면 '스스로에게 말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앞서 살펴보았던 사무엘상 23장 2절에 있던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라고 기도하며 그일라와 전쟁을 전개했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다윗을 변절

이 모습을 정성규 목사님은 '다윗의 변절'이라고 표현했다. 하나님께 먼저 묻고 공동체와도 소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하나하나 진행했던 다윗이 위험에 빠지자 그러한 태도와 자세가 바뀌어(변절해서) 하나님께 묻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한 후 판단해서 행동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어떤 사건이든 일어나면 먼저 판단하게 되나, 그 생각이 하나님께 갔던 이전에 비해서 이번 블레셋으로의 망명은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으로 갔다는 설명이다. 


시글락 = 구부러짐

그렇게 블레셋으로 망명한 후 있게 된 곳은 '시글락'이라는 곳이었다. 재밌게도 '시글락' 원어의 뜻은 '구부러짐'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윗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에서의 삶도 그리고 시글락에서의 삶도 결코 편하지는 않았다. 정말 매 순간 삶과 죽음을 왔다갔다는 전쟁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시글락에서 다윗이 했던 일은 블레셋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자비로웠던 다윗이 삼상 27장 9절에서는 무자비한 살육자로 변신한다.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는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선택받았던 다윗이 이스라엘과 대치하고 있었던 블레셋의 편으로 전쟁을 했던 것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헷세드)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햇세드'라는 표현처럼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은 결코 포기함이 없으시다. 내가 나를 포기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 사랑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던 그리고 신약에서도 마지막 심판의 때에는 결국 그들(이스라엘 사람들)도 일부 구원하신다는 그 놀라운 사랑의 언약을 표현하고 계시다. 


하나님의 간섭하심

다윗의 시글락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은 2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왕의 호의를 맡을 뻔 했으나, 주변 신하들의 반대로 결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약 참전했다면… 어휴~ 아찔해지는 장면이다. 


두 번째는 나발의 추수곡식을 받으려고 하다가 외면당해 그를 죽이려고 가는 도중에 아비가일을 만나게되는 사건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나발을 죽게하셨고 다윗은 아비가일과 결혼해서 후일 솔로몬까지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다윗을 블레셋 생활 속에서 아비가일의 일이 하나님의 간섭으로 볼 수는 있지만, 블레셋 망명생활과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 


신앙 = 다윗의 깊이 있는 기도 배우기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지속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하니님께 먼저 구하는 태도를 묵상하게 되었다. 다윗은 아무래도 극심한 사울의 추격이 너무 힘들어져서 하나님과의 뜻과는 다른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윗은 순간 하니님께 기도했던 태도와 자세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비전도 결국 잃어버릴 수 있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삶은 어떠한가? 


'이에 재웅이가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하며 기도와 말씀의 생활을 하고 있는가? 어렵다. 매일 말씀을 보고, 모든 행동 전에 기도를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직 습관화된 모습은 잘 나오지 않는다. 또 현재 다소 나태해진 삶으로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이 무지 약해졌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죽음의 연단을 받았던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하나님을 향해서 외치고 부르짖으며 그 마음을 사기 위해서 엄청 노력했다. 


기도와 말씀으로 생활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 외에 나의 삶의 기준을 잡을 만한 다른 방도는 없다. 


엄청난 하나님의 개입하심

그리고 다윗이 엄청난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느꼈듯이 나도 내 삶 속에서 엄청난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 은혜와 하나님의 섬리하심은 나의 삶 속에서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흔적들로 남아 있다. 아직 내 삶의 날씨는 흐림이다. 해처 나가야할 굽이 굽이가 너무도 많다. 근데 요즘은 다소 자포자기, 어떻게든 되겠지~ 힘들다~ 애라 모르겠다~ 가 너무 많은 것 같다. 


ㅈㅐ ㅇ ㅜ ㅇ ㅇ ㅣ ㅡ  시편 

세상은 내게 세상을 살기 위한 아이템으로 돈, 권력, 지식, 건강, 인맥 등을 펼쳐 보입니다. 

한 때는 나의 손 안에도 그러한 아이템들 가운데 한 두 가지는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하며 생활했던 적도 있습니다. 

나도 세상에서 멋진게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었으니까요~ 

그러나 환난의 날이 이르매 내 손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아이템들은 존재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 바닥을 보고 나서야 내가 이루었던 일들이 내가 아닌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이루어냈던 열매들이었음을 생각해 내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소유했던 아이템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천하무적 아이템이 내게도 동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아이템을 찾아 보고 있으나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삶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서두르거나 나의 생각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행복이요 내 삶의 방향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금 나에게 물어 봅니다. 

나는 삶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매 순간 그 분 안에서 발견하고 

그 분과 동행하며 생활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 같은데, 알 것 같은데… 

주님, 잘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가 봅니다. 


믿음도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주님~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 '믿음'을 다시금 사모합니다. 

놀라운 은혜를 주셨던 주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셨던 주님~ 

영원한 행복을 느끼고, 참 기쁨을 선물해 주셨던 주님~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남과 함께 행복하는 방법을 선물해주셨던 주님~ 


내가 주님을 의뢰합니다. 

주님의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며 천하무적 아이템이십니다. 

내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열망을 품어 주시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도 품고 사랑해 나가는 생활되게 하소서! 

Dynamic Life! have a exiting time!! 누리는 내일을 소망합니다. 


감사와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오늘의 말씀을 다시금 나의 맘에 새기는 삶이 되게 하시고, 

매일 매일 아니 우선 내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생활하는 하루되게 하소서!  


여호와를 의뢰하며 그의 품에 거하기를 사모하는 자에게 놀라운 시간을 허락해주시는 

나의 사랑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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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img.blog.yahoo.co.kr/ybi/1/7c/a8/rode2009/folder/207/img_207_1028_0?1181851404.jpg


 


본 설교는 부천예인교회 2012년 2월 19일 정성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작성되었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은 다양하다.  기도를 통해서 혹은 성경읽기를 통해서 등… 그 중에 여전히 내게 비중있는 하나님의 메시지 중의 하나는 설교를 통해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은 우선 내 마음의 울림이다. 내 안의 성령님과 공명하는 메시지에 크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 말씀을 붙잡는 것도 나의 의지이며, 하나님의 향한 나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 후기를 통해서 설교의 메시지를 붙잡고자하는 생각은 많았으나, 시도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몇 번이나 이러한 후기를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설교를 리뷰하면서 다시금 하나님의 메시지를 다시금 새겨보는 것은 참으로 필요하고 의미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바리새인에 대한 성찰

오늘 설교의 시작은 톰 허베스톨의 '불편한 진실, 내 안의 바리새인'으로 시작되는 바리새인들의 화두가 던저졌다. 이전에 나도 구약을 공부할 때 우리가 모르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파, 사두개인 등 각 분파에 따른 배경과 맥락이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님을 알게 된적이 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그 부분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바리새인에게는 배울점이 많다! 

예수님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마태복음23:13)하시며 많이 혼내긴했지만, 그들은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 기도하고, 세속과 구별된 삶을 살며, 동료애가 남다른 사람이었고,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적극적인 전도자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내용도 잘 알지 못한채 너무 쉽게 그들을 비방한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한 그들의 모습을 외면한채 말이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용서받은 죄인) VS 바리새적인 그리스도인(스스로 의인)

그럼 과연 온전한 그리스도인과 바리새적인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점에서 정성규 목사님의 관점이 돗보인다.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스스로 의인'이라는 자의식이었다고 설교자는 설명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져야할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용서받은 죄인'의 모습인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의인으로 생각하기에 그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자신이 해석하는 하나님의 생각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양 표현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후 다윗의 행동을 통해서 '용서받은 죄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오늘의 본문인 사무엘상 23장 1절 ~ 5절 말씀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 지역을 공격하고 그들의 전쟁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나와 있다. 


이 상황에서 다윗은 행동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윗은 여호와께 물어 그일라를 공격한 블레셋을

공격할까요?라고 묻고 하나님은 '가서 그일라를 구원하라'라고 말씀하신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다윗의 위대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행동하기 전에 물은 것도 훌륭하지만, 그의 탁월함은 그 이후에 나온다. 

다윗은 자신이 묻고 기도한 내용을 아둘람 사람들과 나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라고 (삼상 23:3하반절) 두려움을 호소한다. 이러한 의견의 충돌을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냈는지 자세한 성경의 기록은 없다. 그러나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라는 4절 말씀을 통해서 아둘람 공동체가 다시금 기도를 하며 의견의 일치를 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다윗은 용서받은 죄인의 모습으로 먼저 자신의 하나님 앞에서 낮추었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왕으로 지명을 받았지만 그는 다시금 아둘람 공동체 사람들에게도 낮추어, 함께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안봐도 비디오다~ 역쉬~ 사랑받는 다윗!! 그것을 진리로 믿는다면 나 역시 그 다윗을 행동과 마음을 본 받아야할 것이다. 오늘 내가 다시금 마음에 새기고 싶은 것이 바로 '용서받은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과 사람들을 섬김

다윗을 모습이다! 


설교를 통해서 나의 삶을 돌아보다

나는 과연 먼저 하나님께 물으며 나아갔는가? 또한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해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게 물으며 정말 겸손한 자세로 함께 나아갔는가? 최근의 삶을 돌아보면 많이 반성하게 된다. 


먼저 묻자! 

의견이 다를 때도 다시금 묻자!! 그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처럼 말씀해주실까?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윗도 그랬다. 항상 하나님께 물었지만, 항상 하나님께 받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편을 통해서 그의 행동 양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God(Jesus) is my everything? Really?

다윗을 정말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정말 하나님을 갈망했으며, 간구했으며 항상 하나님과 호흡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이다. 삶의 중심이 정말 하나님밖에 없었다. 나도 내 삶의 중심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모셔두고 싶은데, 최근에는 너무나 영적으로 나태해져있었다. 다윗과 같은 갈증이 내게는 없었다. 하나님~ 저는 정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없으면 저 죽습니다! 제발 오늘도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옵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요~ 부족한 자이나, 주님이 나와 같은 자를 돌아보시니 그 은혜에 감격을 합니다! 그 믿음을 허락함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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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복사골문화센터에서 진행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의>

부천 예인교회의 소모임에서 진행하고 있는 부모성장 세미나에 참석을 했다. 
지난 주에는 샤롯 메이슨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이번 주에는 사교육 문제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가까운 후가 근무했던 곳이고, 
아는 분들도 많이 관여했던 곳이라 사교육없는세상이단체는 창립 초기부터 익숙했던 단체이다. 
현재 사교육문제가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많이 성장한 기관이기도 하다. 
또 사교육없는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나 역시 많이 동의하기도 했다. 

근데 오늘 송인수 교수님의 강의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우선은 내가 현재 교육을 디자인하면서 현재는 학원에서 학습코칭, 영어 교육 프로그램 등을 디자인하고 있다. 
업무적으로 연결되다보니, 관련 내용들을 많이 공부할 수 밖에 없고 많이 공부하다보니 관련 이슈를 접근할 때 많이 조심스러워진다. 

근데 오늘 들은 송인수 교수님의 강의는 너무 극단적인 표현들이 많았다. 
교육이란 정말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사교육하면 된다 안된다 학교 교육은 좋다 나쁘다.  등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물론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다보니, 시간적 제약으로 편리하게 극단적인 표현으로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은 이해가 가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또한 지나치게 사교육없는 세상의 입장을 강조하다보니, 모든 사교육 관련 법안과 관련 자료는 마치 사교육없는 세상에서 만든 것처럼 설명되는 것도 우려점이 있었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사교육의 방향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스마트 부모가 되자~ 
학생의 교육은 학교가 혹은 학원이 또는 유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부모가 반드시 감당해야하는 역할이 중요하고, 그 부분은 가장 크다. 자신의 책임을 사교육 혹은 학교로 전가하려해도 역시 한계가 크다.  학교나 학원은 정말 스마트하게 학생의 필요에 맞춰서 적정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은 진로와 진학지도이다. 
대학을 가는 이유도 대부분 장래의 직업과 연계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에 가서도 또는 직장에 들어가서도 자신의 목표가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공부는 끝이 없다. 그럼 공부에 대한 단기적 접근이 아니라 장기적 접근을 고민해야하고, 정말 삶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중요하다. 그래서 학습에 있어서는 독서교육이 강조될 수 밖에 없고, 문제해결능력, 자기통제 능력 등 자신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개발하는 학생들의 지도가 중요하다.  

과연 서열화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세상을 역류하는 자기주도성 기르기~ 
학원에 들어와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한국의 입시제도에 대해서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은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1등부터 1,000 등까지 일렬로 서열화해서 줄을 세운다. 이 부분에 자유로울 수 있는 부모님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정말 대안은 다양하다. 최근 대학교를 필리핀에서 공부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앞으로는 이처럼 선진국이 아닌 다양한 국가의 대학들에게 공부하는 지역의 전문가와 새로운 문화적 소통능력을 갖춘 글로벌 리더들이 많아 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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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나를 선택하시고, 
구속하여 나를 이끌어 주시는 주여 감사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길 원하는데, 
여전히 내 삶은 내 중심 속에서 하나님이나 타인을 위한 마음보다는 
나의 욕망이나 나의 편안함을 추구함이 항상 앞서 있음을 느낍니다. 

현재 나에게 허락된 모든 삶이 주님의 은혜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감사와 자신을 내려 놓는 자기 부인의 모습은 점점 찾기 어려워집니다. 

지난 주에는 영적인 생활에서 너무 피폐한 생활이었습니다. 
업무적 회의로 인해 금요철야도 못드리고, 주일에는 심사한다고 예배도 못 드리고, 
(개인적으로는 심사비에 대한 욕심이 컸던 제 자신을 회계합니다) 
전반적으로 기도의 생활과 말씀을 보는 생활도 너무 부족했음을 회계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다시금 글로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의 나약함을 잘 알고 있사오니 먼저 주님을 우선시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케냐 선교를 준비하는 유경일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진행하는 모든 과정에 무리가 없이 가정의 평안함 가운데서 잘 진행될 수 있고, 
준비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함께 근무하는 김지환 형제님! 
제가 먼저 잘 섬길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번 주 진행되는 학원의 방향성이 잘 결정되어, 
실제적인 도움으로 모든 구성원이 성숙되는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직장에서 먼저 맴버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본이되는 삶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나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귀한 가정을 허락하여주소서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고, 서로를 돌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얼마 전부터 교회 생활을 시작한 김태영 선생님, 
천주교 교인이지만 신학공부에 뜻을 두고 있는 고성훈 선생님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은혜로운 교회 생활과 신학의 기회가 열리길 기도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하루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인도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메신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라며, 

날 구원하신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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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예인교회에서 국제활동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과 모여서 재미있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몇 가지 수기를 모아서 수기를 통해서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국제개발협력 이야기를 작성하는 것이다. 

덕분에 몇 가지 단기선교 수기가 모여졌고, 오랫만에 그러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나도 참 익숙했던 이야기들 인데도 오랫만에 관련 글들을 읽어보니 참 새롭고, 그를 통해서 많은 은혜가 밀려오기도 했다. 
역시 받은 은혜를 기록하고 나누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려는 것은 은혜를 넘어서 그 수기를 통해서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국제개발협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은혜로운 글들에 나의 이야기가 누가 되지는 않을지? 매우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단기 선교 혹은 단기 봉사활동 중에서 그래도 가장 의미있는 활동을 꼽으라고 하면 나도 의료활동을 이야기할 수 있다. 
현지에서 참 부족한 부분이고, 의미있는 활동이지만 국제개발협력의 관점으로 접근해보면 고려할 요소들이 많다. 

우선 순수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나눈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러한 가치있는 열정과 사랑이 어떤 면에서보면 한국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천원짜리 한 장을 지하철에서 주고 나오는  경우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의료 단기 선교는 가는 봉사자도 돈 몇 푼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은 비용과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의 문화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조금더 깊은 성찰이 없다면 우리는 불우이웃 성금을 얼마 내고 마치 한국의 빈곤퇴치를 위해서 상당한 기여라도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이야기의 출발은 국제개발협력의 기본이 되는 프로젝트 사이클 관리 (Project Cycle Management ; PCM)로부터 시작된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맴버들과 관련해서 소통한 후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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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청년부 활동 하반기부터 시작한 것이 새가족반을 섬기는 일이었다. 
어느새 그 일도 마감할 때가 된 것 같다~ 

어느 정도 형식이라도 갖춰놓았으면 좋았으렷만, 몇 명 소개하고 섬김다가 올라가는 것 같다. 
그래서 항상 마무리는 중요한 법. 
현재 1명의 형제와 2명의 자매를 통해서 새가족 4주차 모임을 하고 있다. 
한 명 한 명 소개하는 순서가 있는데, 생각처럼 자료소통이나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이번 주에는 단 한 명단 소개하게 되었다. 

내용을 어떻게 꾸며야할지도 다소 막막하지만, 나름의 내용들로 꾸며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http://prezi.com/0oh7p4x7necb/pres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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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예인교회에서 사역을 하시던 이진오 목사님이 교회 설립을 시작한 지 약 10개월만에 어느 정도 교회의 모습이 갖춰져서 오늘 설립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참여하는 청년맴버들과 가깝게 지내고 이진오 목사님은 내게 기독교 사회참여 활동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신 분으로 미리와서 준비도 살짝돕고 예배를 함께 드렸다. 

더함공동체 교회는 왜? 이곳에 세워져야 합니까?
설립예배 설교를 맡은 정성규 목사님은 이렇게 화두를 던지며 설교를 시작하셨다. 
정성규 목사님은 교회의 부르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신다.  


본문 창세기 19장 23절부터 29절은 롯이 있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교회가 해야하는 일은 본문 29절처럼 의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하고, 그래서 멸망될 수 밖에 없는 성도 능히 사릴 수 있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함공동체 교인이란 이런 결과에 이르도록 노력해야한다고 강조되었다.  


예수님께 병고침을 받기 위한 지붕을 뜯어 병자를 내린 친구들. 예수님은 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고 그 병자의 병을 고쳐주셨다.   당사자의 믿음이 아닌데 왜? 병자를 고쳐주셨을까?를 고민했는데 더함공동체의 성도들도 

하나님께 인정받아  더함공동체 교회를 생각하사 누군가를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함께 참여한 모든 사람이 기도를 드렸다.  


독일 통일을 있게 했던 니콜라이 교회의 이야기처럼 시대의 필요와 영향력을 미치는 더함공동체 교회가 되길. 
필자 또한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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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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