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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교회 설교후기] 예인교회의 공의와 정의는...

오늘 설교는 여느 때와는 달리 교회에 전반적인 운영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아마도 정성규 목사님은 어제 진행된 지명방어의 교회 행사를 마치고나서 설교를 대폭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익숙하게 들릴 수 있는 교회..

[예인교회 설교후기]구원은 삶의 밑바닥(BOL)에서 세워진다.

오늘 설교는 공의와 정의로 부르심 두 번째, 구원(공의와 정의를 논할 자격)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늘 정성규 목사님의 설교의 핵심은 진정한 정의와 공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원이 선행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온..

[부천 예인교회 성경강좌 후기] 믿음과 행함, 강사 숭실대 권연경 교수

4월 한달간 부천 예인교회에서는 식사 후 오후 2시부터 예배가 진행되는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성경강좌가 4월 한 달간 진행된다. 지난 주와 이번 주는 숭실대 권연경 교수를 통해서 '믿음과 행함'에 대한 강좌가 진행되었다...

[부천예인교회 설교 후기] 아둘람4, 다윗의 변절

< 다윗을 도피 생활 경로 > 사진출처 : archintor.egloos.com 이 설교 후기는 3월 4일 부천 예인교회 정성규 목사의 설교 '시글락 - 구부러짐'을 듣고 작성되었다. 지조 vs 변절 사실 역사 속에서 지조와..

<사진 출처 ; http://unashamedworkman.wordpress.com >


요즘 신학 공부에 대한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되었다. 설교, 목회 등 관련 키워드가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두서없는 설교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 번 적어 보았다. 

내가 생각할 때, 설교는 우선 대상과 상황에 맞춰서 복음을 해석해내는 능력이란 생각을 갖는다.  

설교를 미리 준비할 수 있을까? 설교는 물론 성령님으로부터 나와야한다. 따라서 준비가 되어도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준비해야 겠지만,  설교의 구조와 틀. 그리고 설교에 대한 다양한 부분은 나의 삶과 나의 생각들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가능하면 다양한 설교적 배경이 되는 나의 신학적 생각들을 미리 정리만 할 수 있다면 훨씬 좋은 양질의 설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틀은 준비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책을 쓸 때도 있었다.  강연을 중심으로하는 스피커는 큰 맥락은 있는데, 세부적 주제별 강연의 내용은 약하다. 그런데 자신이 쓴 책이 있으면 강연이 내용이 다양해 질 수 있다. 이는 관련된 주제의 깊이와 내용의 콘텐츠가 그만큼 많이 지기 때문이다.
 

설교의 종류 ; 강해설교 - 성경 각 권별 주제와 그 뜻에 맞춰서 

                   주제설교 - 각 주제별로 

    각 주제별로 신학적 접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하다. 설교에 대한 구조를 갖고, 그에 맞는 하나님의 인식의 틀을 갖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큰 틀에서는 먼저  <창조 - 타락 - 구속 - 심판>을 주제로 성경의 맥락을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성경의 인물별 설교나,  성령, 기도, 예배 등 신학적 주제에 대한 설교도 괜찮을 것 같은데,
현재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경영하는 방법이 다시금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을 사용하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언제 사용하지는지도 성경적 맥락을 통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  설교의 새로운 접근법. 

  그냥 묵상할 수 있을까? 설교 때 설교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자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잠잠히 듣는 설교도 가능할까?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우선 성도들의 반응에 있어서 약할 것 같다. 

 *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속성을 이해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 같다. 

   나를 왜? 창조하셨을까? 

   나는 왜? 타락했을까? 

   어떤 노력을 통해서 구원을 이룰 수 있을까? 

   구원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은 어떻게 심판하시는가? 


어떤 사람은 주기도문 하나의 기도문을 가지고 책을 한권 쓴다. 

  나도 '주기도문', '로마서', 각 성서적 내용을 가지고 책을 작성해 보면 어떨까?  성서에 대한 깊이 있는 묵상과 내용을 필요하고 중요하다. 결국 전문성은 디테일(세분화)에서 나온다. 


성경 인물을 통해서 보는 성경의 각 주제 (예를 들면 시험의 사례) 연구가 가능핟. 성경 인문이나 시대적 흐름은 하나의 모델링이다.  성경이 모델링이란 생각에 미친다. 성경의 사례들을 통해서 현재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의 나라를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시험'이란 주제로 설교를 한다고 했을 때, 

시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 


욥 - 욥의 시험은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사탄의 시험, 친구들의 논리는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욥기서에 대한 깊이 있는 묵상. 성경을 하나씩 접근하는 노력.   

  하나님의 뜻에 충분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논리가 설득력도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정리해서 묵상해볼 필요가 있다. 
 
성경의 내용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는 일은 참으로 끊질기고 어려운 노력이 될 것 같다.
그래도 내겐 참 기쁜 노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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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부천 예인교회 9주년 기념특강손봉호 교수의 '안디옥 교회

http://onair.olleh.com/younstory79/lwz 함께봐요부천 예인교회 9주년 기념특강손봉호 교수의 '안디옥 교회http://oai.kr/lwz

부천 예인교회 9주년 기념 특강으로 손봉호 교수님을 모시고, 안디온 교회를 통해서 배우는 초대교회의 정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존의 상투적인 안디옥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새롭게 교회의 방향과 정체성에 대해서 점검하고 묵상할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오늘 강연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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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아파하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낙관주의와 승리주의가 매우 염려스럽다.   

한국에서 외국에 교회에 대한 글을 기제했는데, 각 내용의 제목들이 거의 '한국 교회 성장 폭발' 

등 거의 모든 글이 낙관적이었는데, 나(손교수)의 글만 비판적으로 기제된 적이 있었다. 

Time지 등 언론에서 주목을 받은 적도 있다.  


한국교회가 너무 성공했기 때문에 이탈하는 것이다. 연보가 늘고, 사회의 영향력이 커지고, 

  교회에 뭐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을 팝니다>라는 책도 있다.  하나님보다 교회 중심주의. 우리교회 우상(개교회주의)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네델란드에서 유학을 할 때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거절한 경험이 있다. 학교에서 참 신기하게 보았는데, 

당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기에 열등의식이 있어서 받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에서 주는 장학금은 받은 경험이 있다. 

그 이유는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은 내가 직접 받으러 가야하는데, 국가에서 주는 장학금은 통장으로 그냥 주는 것이었다. 

당시 경험을 통해서 주는 주최가 모호하면 모호할 수록 받는 사람은 편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구체적이면 구체적일 수록 받기 어렵다. 그래서 개인이 구제를 할 때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구제사역을 할 때 교회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제합시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내가 소속된 교회만 일부 헌금을 했고, 다른 교회들은 전혀 헌금을 하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다. 

  한 교회 이름으로 하면 돈을 낸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하면 돈을 안낸다. 과연 무엇이 더 우선순위인지 

보여지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바나바"  

  돈이 좀 있었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 

  사울을 대리러 다소에 갔다. 

  바나바는 사울이 자신보다 더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울이 모든 영광을 차지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 나라 목사님들 가운데 똑똑한 부목사 위임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못난 교수일수록 훌륭한 후임자를 뽑을려고하지 않는다. 학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한 경우가 많다. 

 교회를 사랑하면 훌륭한 후임자는 모신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의 특징은 -> 자기를 낮추고, 예수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이다. 

   바나바가 없었으면 바울도 없었다. 난 바나바에게 더 많은 매력을 느낀다. 


사도행전 11장 26절. 

  안디옥에서 비로서 크리스천(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욕하기 위해서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중립적 혹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말하는 것마다 그리스도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 교회는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가? 저 교회를 보면 저 사람을 보면 예수가 생각날까? 

 한국에서 기독교하면 생각하는 것은? 한국에서 교회를 생각하면 정직을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 법원에서 위증하는 경우 일본에 비해서 700배가 넘는다. 

    대한민국은 도덕적 야만국이라고 할 수 있다.  


안디옥교회는 최초로 선교사로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한다. 

  우리 나라는 조금 부족한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지, 최고로 목회 잘 하는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지는 않는다. 

  선교사는 한국 교회에서 가장 유능하고, 믿음도 충만하고 실력있는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야 한다. 

  안디옥교회는 자기 교회보다 선교가 중요해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선교사로 보냈다. 근본적인 가치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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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부천예인교회 8주년 기념 예배의 모습. 사진출처 http://www.yein.org >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운영은 민주적으로, 소유는 최소한 나눔은 최대한!" 이라는 가치를 걸고 부천예인교회가 시작된지 벌써 8년이 되었다. 이 내용은 부천예인교회 8주년 기념 특강으로 언덕교회 이승장 장로(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님을 모시고 진행한 특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또 다시 불었던 메가처치 논쟁
최근 한국교회는 사랑의 교회 건축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다시금 메가처치 논쟁이 휩싸인바가 있다. 다양한 논의 가운데, 작은 교회를 지향해야한다! 어느 정도의 교회 규모가 적당한가? 를 비롯해서 다양한 담론이 속에서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고민을 한 바 있다.

그럼 우리 교회는? 작게 or 크게?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교회는?? 큰 교회가 되어야하는가? 아니면 작은 교회가 되어야하는가? 큰 교회가 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작은 교회가 되면 좋을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이 이념적 혹은 개념적 논쟁에 너무 치우친 것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된다.

이에 대한 이승종 장로의 설명은 명쾌했다. 행정학자로서 큰 조직과 작은 조직의 특징을 비교하고 각각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작은 교회의 네트워크를 이야기했다.

내가 목사 혹은 장로라면 교회 크기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교회 운영의 주최가 되는 입장에 서보면, 운영상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에 된다. 그때 마다 생각하게 되는 것은 교회가 커지면 이런 어려움은 없어지거나 최소한 줄어들텐데.. 라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운영주최들을 중심으로 교회 부흥을 이야기하면서 교회 확장에 열심을 내게 된다. 왜? '하나님의 일을 보다 열심히 효율적을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럼 (서양에서 잘 하듯이) 문제를 분석해서 생각해보자!

큰 교회의 장점은 역량의 크기 때문에 선순환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역량이 크기 때문에 교육도 봉사도 선교도 보다 규모있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인들의 참여도 높아지고 그러한 활동을 통해서 자부심도 커져 교인들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큰 교회의 단점은 '매개의 변증법'이다.
조직이 커지다보면 이를 운영하는 조직이 커지고, 이로 인해서 관료제가 형성된다. 관료제는 성격상 구성원들의 필요와 반응에 둔감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엘리트 중심의 교회가 된다. 교회의 주인은 따로 있게 된다. 교회의 각 영역의 필요에 평등하게 반응하지 못한다. 다시말하면 교회를 섬겨야하는 사역자, 운영자 들이 교회의 목적이 된다. 수단이 주인이 되다는 것이다. 바로 '매개의 변증법'이다.  이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국가의 관료들이 국민이 아닌 정권을 위해서 일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큰 교회의 사역자 혹은 운영자들은 한국의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강한 권위가 부여된다.

'매개의 변증법'에 대한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교인들이 보이는 대응전략에는 대략 4가지 유형이 있다. 

1. 충성전략
   우리 교회 설교 한번 들어보세요! 우리교회가 얼마나 좋은데..

2. 무시 전략
    난 그냥 일 주일에 한 번만 교회에 가면 되는데, 교회말고도 신경 쓸일이 많아서...

3. 흘러다니는 기독교(부유 기독인)
    이 교회, 저 교회 한 번씩 다니는 교회 관광단 같은 유형으로 이탈 전략이다.

4. 보이스 전략 (외치는 방안)
   교회의 개선안에 대해서 외치는 전략이 있다.
 
이처럼 매가 처치 논란에 반대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작은 교회 운동이다. 그럼 작은 교회의 특징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작은 교회의 장점은 협의를 통한 운영이다.
 사역자나 운영자들의 권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매개의 변증법'처럼 수단이 목표를 대체하는 경우가 작다. 또한 인원이 작기 때문에 협의 민주주의(대의 민주주의 반대)가 가능하고 그러한 협의에 따라 교인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작은 교회의 단점은  역량부족으로 일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자원의 한계로 인해서 원천적으로 일하기가 어려워진다. (역량 부족) 또한 폐쇄적인 경우가 많아서 잘못하면 배타성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웃사랑보다는 교회 안에서의 사랑만으로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작은 교회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시 커지게 되는데, 이때는 어느 정도 규모를 커질지는 규정하는 것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교회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점진적으로 늘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의 대안은 작은 교회 연합운동이다. 
이러한 작은교회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다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작은교회들 간의 연합운동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역량을 증폭할 수가 있고, 배타성을 극복하면서 상호간의 협력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반면 네트워크의 단점이라면 관계성 증진과 전략적 기획이 부족하면 네트워크에 대한 유익성이 모호해져 방향성이 표류하게 될 수도 있다. 교회 성장과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운동도 약한 연대를 통해서 관계성을 확보하며 서로의 필요를 통해서 점차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단계적 협력이 모색되어야만 한다.
 
특별히 이승종 장로님은 소속된 언덕교회의 사례를 통해서 작은 교회에서 나올 수 있는 어려움과 시사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셨다. (최근 언덕교회는 사역자의 부재를 경험하면서 교인들의 이탈현상이 심각해지는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

1. 목회자의 비전과 교회 비전의 불일치
관련된 세력 싸움이 발생하게 되었다. 목회자의 언론 노출을 통해서 교인들의 수가 급증했는데 그로인해 교회의 비전 공유가 어려웠다.

2. 교육의 부재
민주적 운영에서 누가 누구를 교육하나?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교인들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매년 규약 개정을 할 때마다 합의에 어려움을 겪은 바도 있다.

3. 교제의 부재
교제가 약한 상태에서 공식석상에만 문제들을 처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내용도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통해서 흘러나오고 결정되는 것이다.

4. 인사관리의 문제
교회의 운영자나 직분의 자격에 대한 관리가 부재했다. 신앙보다 역량이나 인맥에 대한 작용이 컸던 것이 문제였다.

이번 특강을 통해서 다양한 조직들의 특징도 엿볼 수가 있었다. 회사도 국가도...
우리는 개인들의 필요에 민감한 작은 조직을 지향해야한다(물론 경우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그것은 공급자가 중심이 되던 산업사회의 페러다임에서 수요자가 중심이되는 정보화 시대 페러다임으로 모든 사회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운영도 유사해 보인다. MB정부도 어제는 정와대 내에서의 소통이 되어야 국민과의 소통이 된다고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가 있다. 협의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는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소통방식의 모색이 중요해진다.

다양한 세대를 포괄하며, 인식의 공통분모를 묶을 수 있는 소통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우리 교회에 주어진 과제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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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아직 인생을 논하기에는 이른 나이이지만,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오늘 나누고자하는 묵상은 즐거운 날들과 힘겨운 날들에게 대한 개인의 묵상이다.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겪게되지만, 최근 내가 겪고 있는 문제는 사업을 시작하고 초기에 대부분 겪는 자금회전의 어려움이다. 어려움을 느껴 주님께 부르짖었지만, 침묵하시는 하나님 같았다.

그래도 현재의 고난을 주신 목적이 나의 영성을 위한 것임을 철저히 알기에 평안까지는 못가도 주님 안에서 묵묵히 걸음을 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님이 말씀을 시작하셨다.

먼저는 마가복음 5장 회당장 야이로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해주셨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정말 절실했다면, 야이로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하라" (막5:36 하반절)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너무도 잘 아시는 듯했다. 그 가운데 나의 믿음을 요구하고 계심을 느꼈다.
그 부름에 담대히 나아갔더니, 오늘은 시편 81장 7절을 통해서 주님의 일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오늘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주님응 응답하심에 대해서..

외교포럼 진행에 있어서 대사관들의 협조가 어려웠는데, 독일 대사관으로부터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첫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야하는 콘텐츠에 대해서 갈증과 고민이 많았는데, 어떻게 사업과 나의 브랜드를 이끌어가야할지 어느 정도 구상화가 되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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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21장의 배경은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예수님의 부활체를 두 번이나 만났지만, 짧은 만남이었고, 제자들은 두 번씩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이후 그들의 삶이 어떠해야할지는 몰랐다!

잠시 생각해보자 제자들을 자신의 모든 삶을 던져서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다. 예수님께 올인을 했는데, 그 올인했던 존재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부활체로 나타나셨으나, 이후 또 어떻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갈바를 알지 못했다. 예수님을 따를 때는 배부르진 않았지만 예수님 덕분에 먹을 것도 있었고, 잠자리도 불편하긴 했지만 어디든 잘 곳이 있었다.
이전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잔단말인가?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으므로, 모시고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그런 능력도 인지도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원래 생계를 유지했던 어부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열심히 물고기를 잡으려 했으나, 그날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때 예수님이 찾아와서 물으신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이 누구인지도 모른체 대답한다 "없나이다"

제자들은 너무도 막막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던지고 따랐던 예수님도 없고, 생계를 유지하던 물고기 잡이도 잘 안되고 있으니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절망과 좌절로 깊이 상심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 때 예수님이 다가오셔서 말씀하신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그말을 듣고 제자들은 무심코, 믿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물을 던졌다. 그랬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다. (이 사건의 역사성을 기록하기 위해서 요한은 그 물고기 수량을 세었는데, 정확히 153마리였다.)

그 때서야 말씀하신 그 이가 예수신 줄은 요한은 알아보고, "주님이시라"하고 외친다.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나름 열심히 생활을 해왔다. 선교단체 훈련, 교회 생활, 선교사 생활 등...
그런데 어느 날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졌다. 소명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구직에 문제가 생기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게 되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안 좋아지는 등...

그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점차 내가 광야의 길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광야의 길에서 다시금 주님을 찾게된다.
주님은 이미 내 안에 계셨으나, 어느 순간 내 자아가 커져있어서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삶의 막막함에 놓였을 때, 제자들처럼 절망과 좌절의 기로에 있을 때, 그 때 주님은 다시 내게 찾아오셨다. 어디에 그물을 던져야하는지 말씀해 주신 것이다.

최근 내가 받은 말씀은 "유앤스토리"였다. 그래서 던졌다. 몇 마리나 잡힐까? 3마리? 5마리? 100마리? 153마리?
난 그저 응답을 들은 것에 감사할뿐이다.

그런 주님이 지금 내게 다시 물어오고 계신다! "재웅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난 대답했다. "내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아시나이다"
그렇게 물어오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난 이전에 "내 양을 먹이라"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면 목회사역으로만 생각을 했었다. 말씀으로 성도들을 가르치는 일!
그런데 다시 보니 "내 양을 먹이라"는 표현은 그런 협의적 개념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난 유앤스토리를 통해서 개인들의 가치를 사회 속에서 표현되게 해주고자 한다.
청년 및 학생들의 취업과 연결되어 있고, 국가 경쟁력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개인의 행복과도 연결되어 있다.
"내 양을 먹이라"는 단순히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 외에 각자의 일터에서, 각 가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모든 사명은 반드시 "주님의 양을 먹이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에게 먹이고,
어떤 사람은 회사를 통해서 직장인들을 먹이고,
어떤 사람을 음식을 만들어서 소비자들을 먹이고,
어떤 사람은 가르침을 통해서 학생들이 먹을 수 있게 한다.

그런 주님이 최종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나를 따르라"이다. 다른 것에 상관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럼 주님을 따르는 길은 어떤 길인가? 개인적으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성령을 의지하는 일이다. 내 안의 주님과 소통하고 의지하는 인도하심을 받는 일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그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의 율법을 따르는 길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완성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그분의 도를 따를 것이 중요하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창조주되신 주를 믿는 일이다. 모든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고, 우리는 이에 관리자로 보냄 받았음을 알고 피조물을 관리하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심판자 예수님을 믿는 일이다. 주님이 최후의 심판자되심을 믿고, 사람을 보는 것이라 아니라 예수님을 보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들보다 주님의 뜻을 앞세우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를 지는 길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 재물이 되어야한다. 죽기까지... 아- 힘들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섬기는 일이다. 주께서 오신 것은 섬기려함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려함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사람을 세우는(살리는) 일이다. 어떤 조건이나 상황을 보시지 않고 열 두 명을 선택해서 제자로 세워주셨다. 우리에게는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양들이 있다. 이들을 인도해야한다. 어떤 이에게는 가정이, 어떤 이에게는 기관이, 어떤 이에게는 국가가 맡겨 질 수 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빚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또 구원을 받을 존재로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한다.

참 어렵고 힘들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는 공동체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여러분도 "주님을 따르는 그 길"에 함께 동행하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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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예인교회 새벽기도는 1년에 두 번
  부천예인교회는 새벽기도를 일 년에 두 번씩 3주간 진행한다. 한번은 고난주간에 진행하고 한 번은 하반기에 진행하는데, 보통 가을에 진행하던 것을 이번에는 연말에 기도로 집중할 필요가 있어서 부천예인교회 운영위원회 결정에 따라 오늘부터 첫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기다리던 모교회 새벽사경회
모교회(부천예인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올해는 여러가지로 하나님께 매어달릴 필요가 많아서 하반기에는 자주 새벽기도를 드렸는데, 부천예인교회에는 갈 수가 없었고, 주로 홍대 앞에 있는 서대문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기다렸던 부천예인교회 첫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다. 이번 2009년 대림절 21일 새벽사경회의 주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약속 ; 우리에게 맡겨진 그러나 우리가 붙잡아야 할)



전체 새벽사경회의 주제성구는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언 16장3절

오늘 말씀의 본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립보서 4장 19절

정말 채워주실까? 쉽지 않은 선택
  다른 교회에서는 흔히 나오는 말씀(축복의 성구로)의 뉘앙스지만 우리 부천예인교회에서는 정말 드물게 나오는 설교(말씀)이다. 나는 현재 학교 논문 심사를 기다리며,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진로를 고민하면서 내 안에 정말 하고 싶은 것도 있는데, 갈등하는 것은 현실적인 요건이었다. 진로는 두고 고민하는 기간으로 말씀을 잡고 싶었는데, 사경회 전체 주제도 "하나님의 약속" 말씀도 모든 행사를 맡기라고 하신다. 지금 내 상황에서 현실적인 것(주님 전 지금 그 동안 받은 학자금 대출의 이자를 값아 가기도 힘듭니다. ㅜㅜ;;)을 포기하고, 내 이상을 추진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런데 다윗이 고백했던 것처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18장 1절-2절

재웅이가 경험하고있는 "나의 하나님"에 인생 또 걸어 볼까?
다윗의 경험했던 "나의 하나님" 재웅이가 경험하고 있는 "나의 하나님" 이제 조금씩 알아간다. 주님은 나의 힘이 되신다는 것을, 나의 반석이고, 나를 건지시고, 나의 피할 바위가 되신다. 이 정도는 살면서 경험을 했다. 아직 또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 내가 믿는 하나님! 그리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고 있다. 인생 한번 걸어보리라!! 내가 어디까지 쓰러질 수 있을까? 이젠 내가 선택을 해도 때쓰기 어렵다. 이젠 어느 정도 성숙한 탓이리라..

내가 어떤 상황에도 자족할 수 있을까?
  오늘 정성규 목사님(부천예인교회 목사님)이 말씀하신 선교사의 자세처럼 본문에서 나왔던 사도바울의 자세처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립보서 4장 11절下-12절
  이 얼마나 엄청난 말이며, 무서운 말인가?  사실 이 말은 19절에서 봤던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의 전제이기도 하다. 그럼 내게 요구하시는 자세는 무엇인가? 어쩜 내가 이상을 택한다고해도 하나님은 내게 비천에 처하고 배고픔과 궁핍에 처하기를 요구하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겠다라는 소망이 없다면 그 길을 포기해야해야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 길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나의 믿음을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수지맞는 "하나님의 약속"에 투자하다.
바울의 믿음이 대단하긴하지만, 결코 흉내내지 못할 믿음도 아니다. 아니 흉내내지도 못한다라고해도 한 번 시도라도 해봐야하지 않을까?싶다. 그래서 깨지면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로다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때 비로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지지 않을까? 난 할 수 없어서 힘빠져서 그래서 하니님께 도움을 구할 때! 더욱이 그것은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며, 나에게 손을 내미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수지맞는 거래아닐까? 솔직히 난 손해 볼 것도 없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시면서 그것을 훈련 시키신 것이 아닌가? 나도 자족하기를 배우는 과정이 있다. 그 말씀(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띄어 보자!!!!!

<부천예인교회 새벽사경회 첫 날 모습 ; 왼쪽 끝이 복음주의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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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 이야기는 2009년 11월 29일 하재웅 성도가 부천예인교회 초등부 설교를 통해 만난 성령님과의 교제입니다.

준비가 정말 어려웠던 설교
  지속적인 외부 강의 일정으로 설교를 준비할 시간도 적었고,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을 확보해서 설교 말씀에서 내용을 뽑아내고 초등부 아이들에게 적용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부터 노력을 했는데, 정말 잡히지 않는 방향성으로 너무 힘들어하면서 틈만 나면 다른 일을 하게 되는 집중을 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결국 주일 새벽 3시 반까지도 설교의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잠시 몇 시간 잠을 청하고 교회 출발 3시간 전쯤 일어났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설교가 잡히지 않는 것은 비슷했으나, 안되도 뭐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우선 설교 PPT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림이 잡히지 않아서 평소 사용하던 강의 콘텐츠를 많이 활용했고, 상황적 변수(성령의 도움심)를 기대했다.

이날 본문과 설교 주제는 아래와 같았다.

로마서의 핵심 ; 죄의 마음 vs 성령의 마음
먼저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라마나욧 묵상 읽기표의 이야기를 했다.
  현재 로마서 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적은 것이었다. 로마서는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변인데, 내용의 핵심은 우리 안에 있는 두 마음 즉, 몸을 쫓아가는 '죄의 마음'과 성령을 쫓아가는 '성령의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믿음을 따라 성령의 마음을 쫓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
나와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설명했다. 외모에 재능이 있는 김태희, 외모와 더불어 성실하고 착한 이미지가 부각되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승기, 음악에 대한 재능과 공부도 하버드를 졸업했을 정도로 뛰어난 장한나, 씨름 선수였지만 자신이 가진 재치와 박력을 잘 이용해서 최고의 MC로 활동하고 있는 강호동!
 
성공의 열쇠는 어디에 있나?
  모두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연예인에게는 인기가, 기업인에게는 사업이, 정치인에게는 권력이 성공으로 비춰지지만 우리가 보는 성공의 기준은 자신의 재능(은사)이 쓰임 받는 것이다. 왜 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으로 부터 창조된 걸작품이고, 창조되었다는 것은 목적이 있는데, 목적은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을 쓰임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이 있고 (어떤 사람은 10가지 이상의 재능도 있지만...) 성공의 열쇠는 그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하는가? 아니면 그 재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인가?에 있다.

장미란 역도라는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
어제 세계역도선수권 대회에서 4연패를 달성한 장미란 선수의 예를 들었다. 노력만으로는 어렵고 타고난 재능과 더불어 성실히 노력했기 때문에 세계최고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장미란 선수의 영광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장미란 선수는 성공한 후에 항상 기도를 하는 크리스천이었다. 장미란 선수의 영광은 곧 하나님께 영광이었다. 장미란 선수는 역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며 그 가치를 드러내는 멋진 크리스천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장미란 선수도 사용하시고, 믿음이 없는 파라오도 사용하신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이름을 온 땅에 두루 전하기 원하신다.


내 삶의 현장에서 전도를 고민하다.
성경을 보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수록 나 역시 내가 가진 것으로 그 분께 영광을 돌리고 싶었으나, 어떻게 해야할까?고민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세요!하는 것도 내게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찾은 방법이 아래처럼 어디든 부르면 열심히 강의하고 강의가 끝나면 명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증거하는 것이다.

난 성공했다. 내 재능이 쓰임 받았으니...
그 첫 시도가 몇 일 전에부터 있었다. 동국대에서 진행된 한국대학생정치외교연구회에서 주최한 강의에서 처음으로 전도용 명함을 사용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참여자들의 반응은 너무 좋았고, 20장이 넘는 명함을 사람들이 받아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날도 내 강의 준비는 너무 미흡했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어떻게 진행해야하나?하는 막연함 가운데 강의를 진행했는데, 참가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주님께서 내 입장과 참가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 것이다. 이제 나도 쓰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영광을 내가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리고, 그 영광을 전도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난 성공했다. 내 재능을 쓰임 받았으니... ^^


가치관의 차이 ; 창조론 vs 진화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창조론을 믿는다. 이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지만, 미국에서는 일부에서는 창조론을 일부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친다. 어느 것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은 믿음에 근거해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둘에는 심각한 차이가 있다. 진화론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과 못난 사람이 정해져 있고, 못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없어져가고(그리고 없어져 가야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많아져야하고 더욱 열심히 활동을 해야하는 존재들이다. 과연 누가 뛰어난 사람이고 누가 못 난 사람이란 말인가? 

창조론 ; 못난 사람들이 믿는 이론이다.
  성경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병자들·죄인들·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친구였고,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뛰어난 사람들(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행정가들)은 대부분 예수님과 대적을 했던 사람들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죄인들, 병자들, 배우지 못한 자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변화 시킨다. 세상에서는 쓸모 없을 것 같던 사람들이 병든 사람도 고치고, 사람들도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 시켰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그런 창조론에 근거한 것이다. 세상에 속지 말자!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재능을 주신 것처럼 내 옆에 사람에게도 동일하다. 그래서 나도 귀하고 너도 귀하다.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믿음! 믿음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듯... 그러나 볼 수 있는 것
그런데 기독교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래 카자니 삼각형처럼 우리가 바라보는 비전(꿈)은 믿음을 가지면 아래 삼각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의 팩맨의 구도만 조금 바꾸어도 삼각형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의 믿음도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거나 조금만 방심해도 삼각형처럼 존재를 확인할 수 없게 된다. 그 때 중요한 것이 하님께 불쌍히 보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는!! 하나님 없으면 안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니까! 도와달라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고 말씀보며 매어 달리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내가 가진 재능을 놀랍게 사용하실 것이다.


중간에 부천예인교회 초등부 어린이들과 함께 부른 "걸작품"이란 곡이다.
이 곡의 마음을 담아 내기 위해서 진정성을 가지고 두 번 중간에 불렀다.


어디나 그렇듯이 참 쉽지 않은 초등부 설교인데, 이날은 부천예인교회 초등부 어린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설교를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초등부 어린이들이 너무 예뻐보이고, 그날 만큼은 내 말도 너무 잘 따라 주었다. 무엇보다 너무 감사했다. 주님이 날 사용하셔서 부천예인교회 초등부에게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보이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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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사랑 제물포 장로교회
신앙생활을 하면서 건강한 교회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나의 교회 이력도 청년에 비하면 나름의 굴곡이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친구에 의해서 전도되어 교회를 쭐래쭐래 다녔지만, 교회는 내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장소였고 재밌는 일을 하는 공간이며 존재성을 입증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신앙 "Yes? or No?"를 선택해야만 하는 중요한 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내게 찾아와 주셨고 그리서 고3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줄곧 신앙은 키워왔던 곳은  올해로 55년된 제물포 장로교회이다. 장로회 합동측 교단으로 역사에서 생각할 수 있듯이 매우 보수적인 교회였다. 그러나 내게는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도 많이 있는 곳이다. 내 신앙의 열심이 자라면서 어떻게 하면 더욱더 교회를 섬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면서 청소와 교회 꾸미기를 비롯해 여러 부서를 돌아보며 섬기기도 했다. 성경과 더불어 목회와 관련된 책들을 읽다보니 교회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에 제물포 장로교회는 정기적으로 교회 구조적인 문제들로 인해서 지속적인 상처를 경험해야했고 이로 인해서 상처받고 떠나는 사람들이 발생했는데, 난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속상했고 이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지금은 인격적인 목사님의 섬김으로 안정적인 교회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난 점진적 교회 개혁에 목소리를 냈는데, 당시 교회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주제였던 것 같다. 나름의 시도 끝에서 교회 개혁은 큰 벽처럼 느껴졌다. 정도 많이 들었고 남아서 할일도 많았지만, 내 개인 신앙의 성장과 내가 추구하는 교회에 대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곳을 찾아 해외에서 선교사 인턴십 코스를 마치면서 정리해야만 했다.

두 번째 사랑 높은뜻 숭의교회
다음으로 몇 개 교회를 방황하다가 찾아간 곳은 김동호 목사님이 계신 "높은뜻 숭의교회"였다. 당시 1년이 조금 넘은 교회였고, 교회 개혁을 고민하면서 많은 영향을 주신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의 기치에 깊이 동의가 되었다. 그래서 그 만들어 가는 교회에 나도 미약하나마 역할을 감당하고자 찾아가서 몇 년 간은 열심히 섬겼다. 그러나 그 새로운 희망의 기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난 교회를 만들어 가고 싶었으나 교회는 이미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김동호 목사님 본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목회를 가장 우려하셨는데, 내 관점에서는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김동호 목사님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느껴지면서 드러나는 목회 철학은 그분의 가진 포용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 점차 많아졌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난 교회에 십일조 조차할 수 없었고(다른 선교단체를 도왔다), 교회 사역에 있어서도 점차 멀어저만 갔다. 교회는 단지 예배의 공간이었고, 난 주일 예배에 참여하고 일부 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서 내게 주어진 역할은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신앙의 근원은 매말라가기 시작했다. 다른 교회에 가고 싶었으나 다른 곳을 선택할 대안적 교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때 만난 곳이 부천에 위치한 예인교회였다.

마지막이자 영원한 사랑이고 픈 부천예인교회
예인교회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많다. 그리고 아마도 지속적으로 해야할 것이다. 오늘은 우리교회에 진행되었던 교회에 고민(이렇게 장문의 포스팅을 하게 되는 동기가 된)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예인교회 청년부는 최근 지속적으로 교회론에 대해서 이론과 사례들을 3주간 공부하고, 지난 주에는 마무리 모임으로 필립 얀시가 쓴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 대한 독서토론회를 갖은 바 있다.


필립 얀시가 교회에 대해서 경험하면서 작성한 이야기들인데,
매우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고, 한 때는 교회에 대한 회의론적 생각들로 멀리했다가, 그는 시카고 도심(부촌과 극빈촌의 경계에 위치)에 위치한 러셀 스트리트(LaSalle Street) 교회를 만나면서 우리 시대에서 교회란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배움의 여정을 시작한다. (원재목. Church : Why Bother?)

러셀 스트리트 교회가 가졌던 다양성,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에 집중하고 주위를 바라보고 섬기는 그들을 노력을 보면서 나도 많은 도전을 받았다. 우리 청년들은 책의 내용들을 나누면서 부천예인교회의 모습도 비추어보았다.

여러 청년들은 예인교회의 교인들이 중산층 이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과연? 우리 안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몇몇 지체들은 부모님이 우리 사회에서 약자에 속해있는데, 그런 부모님이 우리 교회에 나온다고했을 때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염려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청년부를 섬기는 이진오 전도사님은 전도사님의 부모님과 누님이 교회에 나와서 적응해 나가는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우리 사회에서 거의 최하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두 분이 교회에 나온다고 했을 때 전도사님이 많은 염려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성도님들의 섬김을 통해서 두 분이 교회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설명하시는데 많은 청년들에게 큰 도전을 주는 내용들이었다. 사역자의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가도 고민해봤는데, 전도사님의 생각은 아니였다는 설명도 덧붙였음. (지면을 빌려 쉽지 않은 그러나 매우 은혜스러운 나눔을 해주신 도사님께 감사^^) 모임을 마치고 마무리 기도를 하는데, 내 앞에는 넘어야할 커다란 산 같은 것이 있는 느낌과 더불어 달려갈을 보여주니 너무 감사하게 되는 은혜도 함께 주셨다.

근 우리 교회(부천예인교회)는 7주년을 맞이하면서 교회의 규약을 개정하는 논의로 활발하다. 우리 교회는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교회가 지켜야하는 신본주의는 곧 민주주의라는 생각으로 민주적 교회 운영을 지향하며,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 중에 있다. 뜨거운 핫 이슈는 교회가 일정 규모(성인 성도 200명에서 300명)를 넘으면 분립하는 것을 명문화 할 것인가?이다.(현재 교인 수 약200명) 이 밖에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 초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 나로써는 여러가지 면에서 논의의 흐름을 파악하기 조차 어렵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용히 기도하며 섬기고 있다.

달 전부터 금요기도회를 통해서 모든 교인들이 기도하면 준비했던 내용인데, 규약 개정위원회를 통해서 진행되는 논의의 과정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짧은 역사이지만, 출신 교회나 혈연 관계 등으로 이미 어느 정도의 입장 차이들도 형성되어 있음도 들리고 있다. (이거 너무 솔직하게 쓰는거 아닌가? 몰러^^;;) 아무튼 많은 진통 가운데 진행되는 이번 논의가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 느끼게되는 점은 난 이런 과정 자체도 너무 감사하고 은혜롭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러한 논의를 이전 교회들에서 했다면... 물론 각자 추구하는 교회의 역할이나 각각의 장점은 다르겠지만 민주주적 운영을 지향하는 우리 교회의 노력에 깊은 신뢰를 표현하고 싶다.

최근 주변 친구들로부터 좋은 교회를 추천해달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자신의 교회는 아무래도 추천하기 어려워서라고 한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너무 감사하게도 난 우리 교회를 적극적으로 추전하다. 다만 조심스러운 것은 최근 배운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전보다 지역 교회(Local Church)에 대한 비중이 매우 커졌기 때문에 내가 생활하고 있는 서울권의 친구들을 우리 교회로 끌어오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서울에 좋다는 교회들의 이야기도 들은 것은 있지만, 들은 이야기로 적극 추척하기란 무지 망설여진다. 누구라도 이 글의 답글 혹은 트랙백을 통해서 당당히 자신의 교회를 소개해주는 지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긴 내 블로그는 아직 존재감이 없어서 그런 정성을 보여줄 블로거도 거의 없겠네 ^^;;)

팔불출이라고 오해 받을 만치 오늘은 교회에 대한 자랑이 가득하다! 그 만큼 감사하고 간절하며, 또 교회(Local Church)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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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들의 궁긍적 VISION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 요한복음 1:7 -

어제 기윤실에서 "크리스천들의 소셜 미디어 활용 방안"을 주제로 모임이 있었다.
어제 그렇게 모임을 하고 오늘 요한복음을 읽는데, 강하게 떠오른 주제는 "Branding Jesus!"이다.

요한복음 1장 7절에서 말하는 "그"는 바로 세례 요한이다. 이는 세례 요한뿐만 아니라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적용되어야하는 궁극적 Vision이다. 그럼 여기서 한가지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례 요한의 미션과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그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다.

세례 요한에게 주어진 Mission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 요한복음 1:23 -

다시 말해 7절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주어지는 궁금적 Vision(지상명령이라고도 함)이라면 23절은 특별히 세례 요한에게 주어진 개인의 Mission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 곳곳에서 확인되어진다.

요한복음의 Vision과 Mission
연대기순에 의해서 오늘부터 내가 묵상하기 시작한 요한복음의 작성 목적(Vision)은 앞서 작성된 다른 복음서(마태/마가/누가)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작성한 Mission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유대교와 구별되기 시작한) 기독교인(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신성만을 강조하던 영지주의자들이 득세하여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을 때, 헬라 철학에서 얘기하는 만물의 본질인 아르케(본질)가 무엇인지를 그들의 화법으로 사도 요한은 기술하고 있다.

"태초(아르케)에 말씀(Logos)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을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한복음 1:1 -

그는 지속적으로 그 만물의 본질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한 행한 능력들에 대해서 기술하면서 그의 구원사역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어렸던 사도 요한은 섬세했던 그의 성품으로 보아왔던 예수님의 기록을 18가지나 추가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요한복음의 Vison이 무엇이고 Mission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진다. 
 
성경 위인들의 Vision과 Mission은?
어찌 이뿐이라 이와 같은 내용들은 모든 성경의 위인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세의 경우를 보자.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면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는 막중한 사명(Mission)을 감당했으나, 그도 출애굽과 율법을 통해서 증명하고자 했던 Vision은 하나님을 증언하고 모든 사람을 모세로 말미암아 믿게 하는 것이었다. - 모세의 Vision이 과연 모든 사람을 주께 돌아오게하는 것이었는가?에 있어서 보다 자세한 신학적 설명이 필요하겠으나, 예수님의 계보 속에 이방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다는 점에서 간략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성경 재건을 했던 느혜미야의 Mision을 통해서도 가장 훌륭한 이스라엘의 왕을 세움을 받았던 다웃의 통해서도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Vision은 모두 같다.

우리의 Vision = Branding Jesus
우리는 무슨 직업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던 간에 크리스천이라면 바로 하나님에 대해서 증언하고 모든 사람을 믿게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이 시대 한국에서 필요한 것이 Branding Jesus라고 보는 것이다. 어제 모임에서 교회를 브랜딩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우려점이 있었으나, 예수님은 철저히 브랜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예수님의 브랜드 지수는 얼마쯤 될까? 어제 논의되는 분위기로 보면 매우 저조하리라고 보인다. 25%정도가 되는 기독교 내에서의 브랜딩과 그 밖에서의 브랜딩은 물론 차별화되는 부분도 크겠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예수님을 증언하러 왔다. 그 빛에 대해서 내가 증언할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X독교? 십원짜리? 더욱더 노력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믿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으면 좋겠구! 그로 인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Branding Jesus!이다.

P.S 이미지 검색을 하다보니, 많은 오해가 타이틀로 많은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말하는 Branding Jesus!단순히 자동차에 물고기 표시를 붙이고 다니는 것이나 십자가 엑세서리 등을 달고 다니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했던 것처럼 주님의 부르심으로(Callin) 내면의 변화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전도를 하는 것이다. 이때 전도는 단순히 교회를 나오게하는 것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것처럼 단순히 광고 효과에 노출되서 인식하는 단계를 넘어 소셜 미디어처럼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목표가 온라인만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Vision이 명확하고, 중심가나 지하철에서 "예수 믿으세요!"하는 것이 우리의 활동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Branding Jesus!를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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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2009년 9월 27일 부천예인교회 초등부 "느헤미야" 설교를 맡아서(성경읽기 표에 의해서) 진행했던 내용이다. 어린이들에게 보다 재미있게 다가서기 위해서 느헤미야를 무릎팍 도사의 초대 손님으로 모시는 컨셉을 시도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데 이에 대한 열정과 준비 미흡으로 다소 어설픈 설교가 되어버린...ㅜㅜ;; 


❚느헤미야 설교 시나리오


무릎팍도사 : 대통령 비서실장 느혜미야

▷ 등장인물 : 강호동(배경호), 유세윤(홍춘기), 올밴(이세훈), 느헤미야(하재웅) 
▷ 준비 : 느혜미야 및 각 상황에 대한 PPT, 무릎팍도사 음악, 동영상 촬영,

느헤미야 프로필
            왕의 술관원 = 대통령 비서실장
            페르시아 제국 아닥사스다 왕(아르타 크세르크세스)의 술관원
  먼저 나이? 참 애매한데요!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관직에 오른 나이가 BC465년이니까. 거기에 2009년을 더하면 적어도 2474세 이상!!! 성경에서는 프로필을 찾기 어려워서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봤습니다. 많이 길지는 않는데요! 본문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패전으로 예루살렘 성이 피폐된 채로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다가 왕에게 청원한 결과, 유대 총독 임명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많은 반대에 부닥쳤으나 헌신적인 노력 끝에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완공했다. 십일조, 혼인제도, 안식일 제도 등 율법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구약시대의 인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의협심이 강하고 인격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연예인도 아니고, 어린들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성경 인물을 초대 손님으로 모시려니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방송처럼 출연진이나 성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싫어도 설교대신 이게 재밌다고 하라는데 해야지!! 어설픈 지식인 설명으로 느헤미야가 누군지 설명이 되겠습니까? 우선 직업을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느헤미야 1장 11절. PPT 이게 뭔미까? 술을 따라 올리는 사람! 뭐 흔히 말하는 술상무네요! 근데 왜? 왕이 동성애? 예쁜 여자한테 술을 받지 왜?

무슨 말씀을! 옛날에는 왕의 자리를 노리를 사람이 무지 많았습니다. 그래서 편하게 취할 수 있는 사람은 무지 무지 중요했습니다. 왕이 외로울 때는 이것저것 함께 얘기도 많이하고,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장! 같은 자리입니다. 

아- 지금으로 생각하면 완전 달라지네요! 한 마디로 공무원이네요! 공무원!! 그럼 술따르는 사람 그럼 이상하니까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부르겠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 그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하는! 지금도 그런데 옛날에는 왕이 죽어! 하면 정말 죽는 시대인데, 정말 엄청난 권력을 소유하고 계셨군요!  그런 엄청난 권력의 자리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왜? 예루삼렘에 갔습니까? 그 때 예루살람에는 뭐 완전히 전쟁 때문에 먹을 것도 없고, 안전 시설이 없어서 위험도 한데, 그냥 왕이 궁전에 있으면서 맛있는거 먹고 술마시면서 즐기면 되지?

제가 대통령 비서 실장이 된 것도 제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압니다. 처음에 공무원이 될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페르시아에서 살고 있는데, 포로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시죠? 지금으로 얘기하면 외국인 근로자 같은 것입니다. 노예처럼 힘든 일은 모두 하고 쉬는 날도 별로 없고, 익숙하지 않은 곳이니까! 언어도 지리도 새로운데 생활은 해야하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전 공무원이 될 때부터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고 싶은 마음으로 공무원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지내다보니까 그리고 제가 욕심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생활했죠! 쉽지는 않지만 거짓말 안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다보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그럼 어린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면서 공부를 굉장히 잘 했나요? 뭐 어쨌든 대통령 비서 실장이라는 자리가 아무나 올라가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그것도 페르시아인데, 지금으로 말하면 미국 같은 곳에서 뭐 오바마처럼 하버드라도 나와야하는거 아닌가요? 오바마 참모진들을 보면 하버드 출신들이 많은데...

그 때는 뭐 학교와 같은 것이 있기는 했는데, 지금 하버드나 서울대나 그런 학교의 모습은 아니였죠! 그리고 무슨 시험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공부하기 편하네요! 시험도 없으면,

전혀 그렇지 않죠! 시험은 없었지만 면접같은 것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부한 것을 물어보죠! 그 나라 언어. 오늘로 말하면 영어 같은 것을 이용해서 과목은 다 있었습니다. 수학도 있구요. 문학도 있고 주로는 철학인데 오늘날로 보면 정치나 역사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면접이면 좀 긴장은 되도 그래도 시험보다 편하지 않나요? 난 시험치르면 죽겠던데...

저희도 언제 면접이 있다고 하면 몇 일 전부터 잠도 잘 안오고 정말 더 열심히 공부합니다. 왜 냐하면 만약 그 면접에서 떨어지면 그냥 노예가 되거나, 다른 사람의 집에서 청소나 일하는 노예로 팔려가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노예로 팔려간다구요? 하긴 옛날이고 전쟁에 겨서 잡혀온 신분이니까... 원래 종으로 바벨론에 끌려온 것이니까!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럼 여기서 좀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 그러니까 구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는데, 그 백성을들 사랑하시죠? 맞죠! 근에 왜 그렇게 힘든 포로생활을 하게 하셔나요? 비서실장님께서는 정말 잘 풀린 경우잖아요? 근데 다른 사람들을 노예나 값난 노동자로 팔려가게 된 것인데, 모든 일을 하나님이 관여하시죠? 못 하시는 것도 없고? 그럼 왜 그토록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잡혀가게 하셨나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나 탈락해 있었습니다. 제가 성경에 쓴 내용 그대로 입니다. 느헤미야 1장 6절부터 8절을 한 번 같이 잃어 볼까요? 봤죠? 모세에게 주신 율법이 무엇인가? 다른 신을 따르지 않는 것. 말씀을 보는 것. 예배드리고 것 외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 등이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죄의 길에서 돌아오라서 하나님이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는데, 결국 백성들이 계속 죄만 지었죠!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페르시아를 하나님이 이용하셨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못된 길에서 다시 바로 잡기 위한 하나님이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잘 되라고 혼낸거내요? 우리 어릴 때 매 맞는 것처럼! 그럼 본격적인 고민 해결에 앞서서 상황이 그렇다면 대 제국 페르시아 왕인 아닥사스다 왕의 입장에서도 자기 나라 종이고 하인인데, 성경에 보니까 그냥 예루살렘에 보내는 것도 쉽지 않는데, 그게 아니라 예루살렘에 보낼 때 성전을 지을 수 있게 나무나 재료 같은 것들도 줬다말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나요?

그런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데요! 사실 저라는 사람이 특별하게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별로 똑똑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제 형제 하나니에게 예루살렘을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에서 불이 붙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니가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시죠? 느헤미야 1장 3절
그 얘기를 듣고 눈물이 나는데, 뭐 제가 할 수 있는게 있나요? 슬퍼서 음식도 먹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죠! 그런데 기도를 드리다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느헤미야 1장 9절. 정말 기도하면서 이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기도하면 정말 확실한 것이니까! 그렇게 경험하며 살아왔으니까.

이렇게 말씀을 보니까 재밌네요! 아 그런 내용들이었군요! 전 그냥 말씀을 따로 그냥 옛날 이야기인가보다.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오- 이거 괜찮다!! 그럼 그렇게 기도한 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나요? 

솔직히 고민을 해 봤는데, 정말 어떠한 일을 내가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누가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예루살렘에서는 자체적으로 성을 지을 만한 능력도 없고... 정말 보이는게 없어서 금식하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와는 간절히 찾는 자에게 응답하신다고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왕과 함께 와인을 마시는데, 왕이 묻더라구요! 어디 아픈데 있느냐고? 그래서 우리 민족이 지금 전쟁 때문에 건물들이 불타고 무너져서 난리가 나서 그렇다고 말씀을 드렸죠!

*** 중략 : 여러가지 미흡해서 이후 부분은 즉흥으로 한 것이 많아서 중략합니다 ***
 
고민해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도 항상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모아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 길이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이 잘 끝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직 그 길을 가는 길이라 힘들어도 참고 인내하면 주님께서 그에 맞는 길을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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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계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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